죽미령 유엔군초전기념비
-위치 : 경기도 오산시 경기대로 742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이 기습 남침하여 4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기세를 몰아 남하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유엔군이 구성된다.
그 유엔군의 일원으로 1950년 7월 5일 미군 제24사단 소속 보병부대 및 제52야포대대 소속 1개 중대로 편성된 스미스 중령이 이끄는 스미스전투부대 540명이 북한 인민군의 남하에 맞서 죽미령에서 싸운다. 이곳 오산 죽미령은 최초의 유엔군과 북한군이 충돌한 곳인데, 유엔군으로서 미군이 참전했기에, 미군이 북한군과 최초로 조우한 곳이기도 하다.
이 오산 전투에서 한국군 제17연대 9중대가 갈곶리에서 죽미령의 스미스부대와 연합작전으로 혈전을 하며 북한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며 같이 피 흘리기도 하였다.
이 전투에서 540명의 장병이 죽미령에서 북한의 인민군과 최초의 전투를 벌인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최초의 유엔군초전기념비는 1955년 7월 5일 미군 제24사단과 장병들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며,

(구) 유엔군초전기념비

유엔군초전기념비

오산 죽미령 유엔군초전비 전경
이 기념비가 위치한 곳이 협소해 1981년 전적지 개발 계획에 따라 (구)초전기념비 앞산에 16,500㎡부지를 마련, 새로 건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곳 오산 죽미령에 세워진 죽미령 유엔군초전비는 내삼미동에 위치하고, 유엔군초전비의 규모는 높이 19.5m, 동상 높이 3.6m로 조형 기념물은 진지의 구축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일영 화백이 제작하였다. 새로 세운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북괴의 이리떼 38선을 넘으니 자유 수호 위해 유엔은 일어나다. 폭력엔 폭력을 다짐하고 급히 달려온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앞장서 죽미고개에 서고 한국군 제17연대 이에 따르니 한·미 연합작전의 서막은 열리다. 혈전 6시간 15분 피바다 이루고 화선은 낙동강으로 이어지니, 한 품은 고혼 이곳에 잠드니 혈맹의 우의 어찌 잊으랴.”
이 전투에서 150여명의 유엔군 소속 미군이 전사하고 장교 5명, 사병 26명이 실종되는 피해를 보았다. 오산지역은 1950년 7월 5일부터 9월 22일까지 2개월 18일 동안 북한 공산당에 의한 지배를 받았고, 9월 24일 퇴각하였다.
매년 7월 5일 장병들의 넋을 위로 하는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다. 기념비 건립일은 1982년 4월 6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