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적사(寶積寺)
- 지정 : 전통사찰 제34호
- 위치 : 경기도 오산시 독산성로 269번길 144(오산시 지곶동 150)
독산성에 소재하는 전쟁터의 사기 앙양과 원혼을 달래주던 호국사찰로서 독산성 동문 안에 자리하고 있다. 독산성 축조와 같은 시기에 전승을 기원하고자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이다.『두산세계대백과사전』에서는 401년(백제 아신왕10년)에 나라에서 창건했다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독산성 안에 있는 보적사. 백제의 고찰로 알려져 있다. 독산성의 영욕과 함께 하였다.
보적사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어느 옛날에 보릿고개로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노부부가 있었다한다. 먹을 것이라고는 겨우 쌀 두되만이 남아 있었고 식량을 구할 방법도 없어 굶어 죽을 지경에 처하였다한다. 노부부는 밥 한술 먹고 며칠을 더 사느니 차라리 이 쌀을 부처님께 공양하여 좋은 일이라도 하고 죽자고 결심하였단다. 그리하여 쌀을 부처님께 바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비어있던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노부부는 이것을 나한님의 신통력이라 여기고 더욱 치성을 올리게 되었고 이후로 보적사란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다.”
보적사는 남한산성의 장경사나 북한산성의 중흥사처럼 군진 속에 있는 사찰이다. 따라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군사들에게 부처님의 가호를 빌어 주는 등 사기앙양에 기여했을 것이다. 독산성에는 2천명이 넘는 군사가 배치되어 있었고, 이 가운데에는 승군(僧軍)도 포함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승려들이 성을 지키는데 힘이 되는 정도가 혹 산성의 병정보다도 나을 때가 있음을 익히 알았기 때문이다.
정조 이후 순조 연간 용주사와 마찬가지로 독산성에는 승군이 편재되어 있었다. 당시 승군은 103명으로 보적사 6명, 용주사 85명, 만의사 12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따라서 적어도 보적사에는 6명 이상의 승려가 상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승군의 치영으로서 보적사의 역할이 중요하였던 셈이다. 순조 연간인 19세기 독산성 성내 126호, 성외 127호가 살고 있었다. 이들의 신앙 공간으로서도 보적사는 존재 의미가 있었던 셈이기도 하다.

벚꽃 만개한 보적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2칸의 규모에 맞배지붕을 얹었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 지장보살좌상과 16나한 및 후불탱, 산신탱, 칠성탱, 산신탱의 불화와 범종이 있으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사적비와 3층 석탑, 요사 2채, 석가세존진신사리 봉안공덕비, 그리고 2기의 석등 등으로 가람을 구성하고 있다.